최은서
내 초기 작업은 욕망의 추상적인 형태를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대학에서 그림을 공부할 때 제일 좋아하고 많은 영감을 받았던 그림들은 아쉴 고르키, 윌렘 드 쿠닝, 필립거스통 같은 추상표현주의나 프랜시스 베이컨의 인간형상처럼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는데 특히 강렬한 색감과 즉흥적인 붓질의 느낌, 구체적이지 않은 반추상적인 형태는 초기작업의 큰 모티브가 되었던 것 같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생성되고 소멸하는 과정을 거치며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소통한다. 라캉에 의하면 이러한 유기체는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외부로부터 얻게 되고 그것을 소모한 뒤 배출하고 또다시 에너지를 수입하고 소모하는 것을 반복한다. 특히 단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욕구에 기반해 에너지를 소모하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외부세계 혹은 타자와 자아의 차이에서 결핍감을 느끼고 욕망을 갖게 된다. 끊임없는 항상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 인간의 경우에 욕망을 추구하는 상태라는 것은 곧 생명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반복되는 욕망의 추구는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하며 과학문명을 발달시키지만 그와 동시에 생태계를 파괴시키게 되고 순수자원의 무분별한 소비와 쓰레기처럼 무질서하고 쓸모없는 에너지의 축적을 통해 엔트로피의 증가에 기여하게 된다.
엔트로피 이론에 따르면 자연은 질서정연한 상태에서 계속 섞여서 무질서한 상태로 흘러간다. 질서가 있는 상태는 곧 효용 가능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초의 순수한 에너지인 석탄을 태우면 에너지와 잔재가 남지만 그 에너지와 잔재를 합성하면 다시 석탄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우주 전체의 에너지양이 일정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여 포화상태가 되면 우주에 더 이상 생명체가 생존하는 것도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비록 그것이 인류에게 아주 먼 일이고 미래에는 해결가능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많은 것들을 만들어내고 가치를 부여한다. 고가의 보석이나 옷, 자동차나 건물 같은 것들은 때로 사람보다 귀하게 대접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 가치가 사라지게 되면 버려져서 한낱 고철덩어리나 화학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가치없는 쓰레기나 폐허가 된 건물들은 인간의 욕망이 자라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처럼 지구 상에서 끊임없이 집적되고 일부는 다시 재활용되어 완전하고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어지고 쓰여지기도 한다. 내 작업에서 보이는 색채덩어리들은 이런 욕망이 내포하고 있는 생명성을 띈 일종의 유기체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마치 박테리아나 세포처럼 섞이고 분화하면서 증가하는데, 형상 면에서 화려한 색채의 반짝거리는 보석이나 유리나 철, 플라스틱처럼 보이기도 하고 혹은 흐물거리는 생명체의 파편이나 흐르는 물, 실타래의 뭉침처럼 표현되기도 한다. 명확하고 견고한 형태와 확실한 기능을 가진 가치 있는 물체와 대비되는 것으로 질감이나 예쁜 색감을 가지고 있지만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며 미약하다. 개별로는 힘을 갖지 못하는 소수자, 소외층의 속성과도 닮아있다.
작업을 지속하면서 반추상적인 표현방식에서 점차적으로 구상적 물체가 들어가게 된 것은 주제를 폭 넓게 전달하기엔 아무래도 반추상의 형식에서는 한계를 느껴서일 것이다. 최근 작업에서는 폐허가 된 건물이나 파편들의 형상과 함께 완전하고 아름다운 자연적 풍경이나 건축적 공간을 합성하여 그리기를 시도하고 있다. 욕망은 본질적으로 재생산을 목표로 한다. 충족되는 짧은 순간이 지나면 다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게 되어있고 욕망이 발생하는 지점은 늘 무언가 결핍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결핍이 채워지면 또다시 다른 것이 결핍되는 것이다. 즉 우리가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살기란 대단히 어렵다. 고달프고 힘겨운 현재를 살아가면서 언제나 이상적인 미래를 꿈꾸고, 지나고 나면 신기하게도 현재보다 좋았던 것 같은 과거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카오스모스(카오스+코스모스)라는 용어는 질서와 혼돈이 기묘하게 결합된 '복잡한 질서'의 세계라는 개념인데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도 완전하고 아름다운 것만 지향하고 보고 싶어하지만 언제나 무질서하고 불완전하고 흐트러진 혼잡한 것들이 섞여있는 세상이다. 아무리 완벽해지려고 해도 완벽해질 순 없고 아름답고 빛나는 것도 영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초라하고 하잘것 없어 보이는 순간과 사물들도 우리 인생의 일부분임을 긍정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최근 작품들에서 잿빛과 장밋빛, 황금빛이 중첩되고 과거를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와 이상적인 미래에의 열망이 뒤섞인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모순적인 공간으로 표현하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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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약력
EDUCATION
2007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졸업
2004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EXHIBITION
Solo Exhibition
2014 반얀트리 아트페스티벌 초대전, 반얀트리 호텔, 서울
2012 ‘Proliferous lumps' 전, 갤러리 아우라, 서울
2007 ‘Organic color-field’ 전, 관훈갤러리, 서울
Group Exhibition
2015 YAP ‘RELOAD’ 전, 폴레칸네 갤러리, 서울
2014 YAP ‘내일의 아트스타’ 전, 갤러리 일호, 서울
2014 홍콩 컨템포러리 아트쇼, 콘래드호텔, 홍콩
2013 서울 아트쇼, 코엑스, 서울
2013 강남 미술협회 정기전, 역삼문화센터, 서울
2011 ‘Best new artist’ 전, 송스갤러리
2011 ‘Curious Sight’ 2인전, 갤러리 모로, 서울
2006 ‘Female in the art’ 전, 갤러리 크세쥬, 서울
2004 ‘청년작가 조망전’, 갤러리 올, 서울
2004 ‘찾아가는 미술관’ 전, 삼일분교, 강원도 화천